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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잡다한 이야기들

어려운 30대의 연애, 이상형 조건 리스트 작성, 이상형과의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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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내용은 나의 실제 경험담, 수필이다. 

 

왜 연애가 안될까? 차라리 공부해서 시험처럼 치를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30대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30대 초 부터 중반인 지금까지 나의 연애는 참 힘들었다. 너무나 심각하게 잘 풀리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도 "이 남자다!" 하고 확 꽂히는 남자가 없었기에 늘 기대했다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아니구나...' 나는 구체적인 이상형이 없었다. 너무 조용하면 재미없고, 너무 외향적이면 불안해서 싫었다. 외모와 직업, 나이와 같은 겉스펙만 보고 사람을 만났다. 내가 겉스펙도 조금 디테일하게 말할라치면, 내게 그런 사람은 없다고 나이도 있으니 적당히 내려놓고 타협해서 만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거라 생각해서 한동안 인연이 닿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만나곤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역시나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다양한 썸 이야기는 나중에 풀 수 있음 풀어보겠다)

나는 굉장히 지쳐있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했던 수 많은 소개팅과 헤어짐과 그로 인한 감정 소비에 다 끊고  급기야는 주님에 의지하고 배우자 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아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단 하나, '진짜 사랑'을 하기를 원했다. 내가 사랑하고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더 주지 못해서 안달나는 그런 사랑. 실제 연애 현장에서는 사랑이 한쪽으로 치우쳐있었다. 내가 좋아하면 나를 별로 안좋아하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내가 상대를 별로 안좋아하는게 연애시장의 진리였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나는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결혼한 친구들의 말.말.말

case 1. 결혼을 일찍한 여자선배에게 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냐고 물었다. "나는 좋아하는 정도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하게 되었어. 나는 이정도면 다른 사람 더 만날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 선배가 너무나 부러웠고 속으로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곤 했다.

case 2. 한달 만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식장을 잡은 내 친구. 도대체 어떤 확신으로 그런 결단을 내렸냐 했더니 수많은 연애를 하면서 느낀 촉이 왔다고 했다. "이 사람은 나를 평생 사랑해주겠구나." 그 친구는 직전 나쁜 남자들을 좋아하고 만나왔었다. 지금은 너무나 순한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조금 밋밋하고 지루하지만 그래도 좋아.너무 편안하고 행복해." 자극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친구.

case 3. 오래 연애하고 20대에 결혼한 친구. "젊을 때 다양한 사람들을 좀 만나볼껄 하는 생각에 아쉬웠어.근데 요즘 주변 보니까 나도 이 사람 놓쳤으면 좋은 사람 만나기까지 오래 걸렸을 것 같긴 해." 그녀는 꿈 속에서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들이 종종 나온다고 했다. 조금만 더 늦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오래 그녀를 지배했었다. "너는 좀 즐기다가 해. 난 네가 부러워. 난 능력있음 굳이 안해도 된다 생각해" 나를 생각해서 말하는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case 4. 30대 후반에 결혼한 남자선배. 그도 꽤나 연애를 많이 했는데 지금의 부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너무 착해서" 라고 대답했다. 기존 여자친구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서 결심했다고. 그리고 그 선배는 지금 쌍둥이 낳고 너무 행복해한다. 

 

나의 이상형의 조건 리스트 작성하기

기독교에서는 <배우자 기도>라는 것이 있다. 배우자가 되었으면 하는 리스트를 상세하게 적어두고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어짜피 못 만날거 뭐하러 하나?" 하고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작년 연말에 생각을 고쳐먹고 이상형 리스트를 작성해보았다.

외모: 키 170 중후반에 호리호리한 체형, 비율이 나쁘지 않아야 함. 단정하고 옷을 깔끔하게 입는 사람. 눈빛이 선한 사람.

성격: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상대의 다름을 존중하는 사람. 기본적인 예의가 있는 사람. 허세가 별로 없고 담백한 사람. 현실 감각이 있는 사람. 내면적으로는 I 이면서 J 성향. 차분한 성격. 여사친이 별로 없고 보수적인 사람.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공감능력, F 성향이 좀 있는 사람.(너무 T면 상처받음) 정리정돈을 잘하면 좋고, 위생적인 사람. 자신의 바른 신념, 취향이 있는 사람(무색무취는 X)

직업: 대기업/중견기업 직장인, 공학계열 선호.

내 이상형은 한줄로 요약하자면, 키크고 비율 좋고 단정한 인상에 차분하고 내향인에 말을 예쁘게 하는 공대남자였다. 

다 적어놓고 나니 설마 이런 사람이 있을까, 있어도 밖에 없고 집에 있지 않을까? 이미 품절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으로 소개팅을 받다.


올 초 나를 잘 아는 회사 동기가 갑자기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다. "언니, 왠지 언니 스타일인 것 같아. 일단 만나봐!"

프로필을 얘기해주는데 내향적인 성향에 직업은 대기업 개발자이고 키가 크고 하얀 느낌의 외모, 성격도 차분하고 착하다는데 속으로 완전 내이상형이잖아? 라고 생각해서 정말 놀랐다.

첫 소개팅 약속을 잡고, 우리 회사 앞 샤브샤브 집에서 그 분을 만났다.자리에 들어서자 잔뜩 긴장한 표정의 수수한 느낌의 남자가 나를 보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딱 봐도 친화력이 없어보이고 눈도 잘 못 마주치고 꽤나 뚝딱거렸지만 나는 단번에 그가 마음에 들었다. 어색해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방금 뿌린 듯한 향수 냄새가 확 느껴져서 귀여웠고, 잔뜩 긴장한 하얗고 갸름한 얼굴이 좋았다. 이 사람도 내게 호감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술 좀 하세요? 2차로 맥주나 와인 마시러 갈래요?"
 "그럼요 좋아요!"

내가 이렇게 대답이 빠른 여자였던가. 그리고 2차 술은 명백한 호감신호 아닌가? 우리는 근처 칵테일바를 검색해서 가게 되었고 걸어가는 내내 심장이 쿵쿵대며 설레었다. 바에 나란히 앉아서 했던 대화들이 선명하게 기억 나지는 않는다. 사진처럼 찍혀서 기억나는건 그 남자의 눈빛과 웃음, 그리고 옆에서 수줍어 하던 내 마음이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알게 된 신기한 우연의 일치 3개가 있었는데 우리가 같은 대학교를 나왔다는 점, 어린 시절 옆 동네에 살았다는 점, 바로 옆 건물의 회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근무했었다는 점이 있었다.

세 시점이 겹치니 우리는 너무 신기하다며 온갖 의미를 부여했고, 나는 어쩌면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과 잘 될까? 날 마음에 들어할까? 그날 불안함과 설렘을 가득 안고  집에 가는 길에 다행히도 그에게서 바로 카톡이 왔다. 


"잘 가고 있어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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