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에서 인사이드 아웃2를 보았다. 스토리를 좀 스포하자면, 영화에서 <불안이>라는 새로운 감정 캐릭터가 청소년기에 진입한 라일리의 메인 감정이 되어 기존 라일리의 신념을 마구 흔들고 바꾼다. 라일리는 원하는 하키팀에 들어가기 위해 불안의 감정을 느껴 평소 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 하키팀 선배들에 다가가 친해지려 애쓰고 기존 친구들을 외면하고 배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자신의 신념이 깨져 버린다. 과도한 불안이 그녀를 그녀답지 못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실망시키고 어느 순간 <나는 부족해> 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불안이 라일리를 올바르게 성장시킨다고 믿은 불안이의 폭주를 다른 감정들이 껴안으며 제어해주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하고 위로하게 된다.
누구나 영화 속이 불안이가 가득한 시절이 있었겠지만 그 정도가 다 다를거라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10대부터 나는 <불안이> 그 자체였었다. 나는 10대에 부모님 사업이 평탄하지 않아서 '우리 집이 곧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나를 혹독하게 몰아세우고 괴롭혔다. 그 뒤로 단 한번도 혼자 마음 편하게 휴일을 보낸 적이 없었다. 핸드폰을 보며 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네가 지금 이럴 때야? 이래도 돼?' 라는 생각에 괴롭고 힘들었다. 처음 직업을 택할 때에도 <불안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보다 <안정적인 돈이 되는 일>을 택했다. 그러다 스스로 많은 후회를 하며 다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기도 했다. 나는 여유가 없고 수치심이 많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나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이룬 나의 모든 것들이 기대치 보다 낮아 부족하게 느껴져 만족하지 못했고 나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30대가 되면서 더 큰 문제가 터졌다. 결혼과 경제적 자유에 대한 불안이 나를 거의 '미치광이'로 만들었다. 마음이 조급해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상처 받고, 잘 알지도 못하는 <부동산 투자>를 해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 내 조급증이 나를 이렇게 망하게 했다고 느꼈고 내가 너무 한심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랑 맞지 않는 남자와 억지로 맞춰보려고 애쓰다가 숨이 잘 안쉬어져서 정신과 약을 복용했고 약 부작용으로 살이 쭉쭉 빠져 약을 끊기도 했다.
이 정도 지경까지 오니 "내가 도대체 뭐를 위해 이렇게 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면 건강까지 잃을까봐 겁이 났다. 어느 날 부모님이 힘들어 하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의 잘못된 생각을 깨달았다. 나는 부모님이 내가 뭐든 잘해내야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했었다. 부모님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정말 사랑하는데.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않더라도 내가 실패하더라도 내가 나 자체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시는데.. 내가 정말 잘못 생각했구나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 불안한 나를 만든건 바로 <나 자신의 과도한 욕심> 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결혼하라고, 성공하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 모두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내 욕심에 벌인 일이다. 나는 내 욕망을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 나 자체로 괜찮아. 억지로 뭘 더 하려고 하지 말자. 결혼 안하면 어때, 성공 안하면 어때."
그때부터 누군가를 억지로 만나려고 하지 않았고 추가 수입에 대한 마음을 접고 회사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되려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웃음이 늘어났고 일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일과 기회들이 생겼다.
그렇게 하루하루에 집중하고 충실하면서 살아갔다. 그러다 보니 숨이 쉬어지고 자책감과 괴로움이 걷혔다. 나를 좀 더 관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몇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만족스러운 직장생활 중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평온하다. 예전처럼 일희일비하거나 작은 일에 심장이 두근대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매사에 덤덤해졌고 여유가 있어졌다. 매사에 감사함이 늘었다.
아직도 내 안에는 <불안이>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불안이가 멋대로 내 감정을 휘두르게 놔두지 않는다. 가끔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부드럽게 타이르고 불안의 감정을 건강한 성장동력으로 바꾸려고 한다.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 나의 시련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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